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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수련기

   
<태극권 수련기>
태극권을 수련한 지도 3년이 넘었다. 태극권은 영화나 대학생 동아리의 부원모집 포스터, 중국을 소개하는 관광용 동영상 등을 통해서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수련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때만 해도 무술이라고 하면 태권도, 소림권, 합기도 등을 가장 먼저 떠올렸고, 나이 드신 분이나 여성들이 건강목적으로 하는 중국식 국민체조 정도로 느껴졌던 태극권은 사실 무술 쪽이 아니라 요가나 기공체조와 같은 항목에 분류되는 것으로 느껴졌다.

지인의 소개로 이찬태극권도관을 방문할 때도 그랬다. 평생 동안 건강을 위해서 꾸준히 수련할 만한 기공체조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무술이 대개 그렇듯이 태극권도 내공수련을 기초로 하므로 형식은 비롯 무술이지만 기공수련 위주로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태극권이 건신과 호신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건 태극권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였다.

이찬태극권도관에 입문하여 처음에 건신십이단금법을 배우고 이어서 정자태극권 37식을 배웠다. 37식 이후에는 태극선과 십삼수 및 대수가 이어지고 사정추수와 기본공13법 등 추수를 배우게 된다. 뿐만 아니라 태극도, 대도, 추수사용8법, 응용8법, 태극검, 태극산수 등 급수가 올라갈수록 배워야 할 것이 계속 늘어 간다.

처음에는 초식 하나 하나와 그 순서를 익히는데 급급했다. 사실 처음엔 동작을 따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물론 지금도 어렵다. 초식의 순서는 반복하다 보면 결국 외우게 되지만, 동작은 가르치는 대로 정확하게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태극권의 동작들이 기본적으로 원 운동이기 때문인 듯 하다.

즉 각이 진 동작이 거의 없다 보니 처음 배우는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을 보면서 따라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눈썰미가 좋아야 한다. 보법도 전후 좌우 직선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후방 45도 라든지, 혹은 270도로 움직이니까 방향도 혼동될 때가 있다.



태극권을 배우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동작과 순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어려운 점은 요결이다. 도관에서 수련을 하면서 이찬 선생님이나 관장님, 선배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씀은 “송”이다. 머리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단어가 “송”이다. 이외에도 “힘을 빼라”, “허리를 위주로 하라”, “등이 굽으면 안 된다”, “바닥을 보지 마라”, “고요하게 하라”, “일정한 속도로 하라” 등 여러 말씀을 듣게 된다. 결국은 태극권의 요결에 관한 얘기였다.

초식을 순서에 따라 하면서 요결까지 갖추기가 만만하지가 않았다. 사실 동작을 하면서 요결을 지키지 못한다면 아마 그 동작은 제대로 된 동작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제 몸인데도 제 뜻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사실, 정자태극권 37식을 배울 때는 좀 지루하기도 했고, 동작이 애매하면서 따라 하기도 쉽지 않아 성질이 급하고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나는 이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었다.

태극권은 37식 권가가 기본이지만 태극선, 태극도, 태극검 등 병장기 영역이 있고 사정추수, 대리, 사용법 등 추수가 있으며, 태극13수, 태극산수와 같이 산타의 영역이 있다. 이렇게 새로운 것들을 계속 접하다 보니 배우는 것 자체에서 재미를 들이고 계속하게 된다.



한참 열심히 할 때는 건신십이단금으로부터 시작해서 권가 37식을 3번 반복하고 병장기와 추수, 새로 배운 것을 연습하기만 해도 2시간 이상이 훌쩍 지나간다. 상당한 운동량이다. 처음 입문할 때 생각했던 건강체조 수준 이상의 강도로 운동을 하게 된다.

이렇게 땀을 흘리면서 수련을 하고 나면 낮 동안에 상기되었던 기운이 내려가서 머리가 맑아지고 오히려 몸에 기운이 샘솟는 것을 느끼게 된다. 태극권은 다른 운동과는 달리 수련하는 동안에는 힘들지만 마치고 나면 근육통 같은 것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몸이 편안하게 풀린다.

하지만 태극권을 운동량만으로만 얘기한다면 에어로빅, 수영, 헬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태극권에는 다른 것이 있다. 태극권은 무술이다. 다른 무술이 건장한 역사(力士)와 같은 느낌을 준다면 태극권은 마치 요부(妖婦)와 같은 중독성이 있다고나 할까.

겉으로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에는 한 수를 감추고 있고, 느린 듯 보이지만 빠르며, 지고 있는 것처럼 하다가도 어느새 우위에 선다. 외견에만 집착하면 보면 볼수록 알 수가 없고, 또 알면서 보아도 보면 볼수록 더 신기한 것이 태극권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듯 한 꺼풀 한 꺼풀 벗기다 보면 새롭고 신기한 것이 계속 나오니까 그 다음엔 무엇이 있을까, 끝에는 뭐가 있을까 하면서 이 태극권이라는 것을 계속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좀 지루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재미(말하자면 진도 뽑는 재미로)로 태극권을 계속 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새로 진도를 나가고 급수가 올라가면 마치 자신이 점점 고수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단순히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추수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됐다. 추수를 하다 보면 어디서 어떻게 안 되는지, 왜 안 되는지에 대해 고민을 자꾸 하게 된다. 어떤 한계에 부딪치는 느낌을 갖게 되고 ‘해도 안 된다’는 좌절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찬 선생님을 비롯하여 주변에 있는 여러 선배들의 도움이 있었다. 권범주 관장님, 대한태극권협회의 최환 회장님, 이지환 감사님, 안찬호 교련님 등 많은 분들이 어려울 때마다 수련을 계속할 수 있도록 알게 모르게 격려와 도움을 주셨다. 아마도 함께 수련하는 동문들이 없으면 태극권이란 무술은 참으로 계속하기 어려운 듯하다.

태극권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3년이 지난 지금과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무엇이 부족한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처음에는 선생님과 선배들이 태극권의 요결을 아무리 말씀해 주셔도 무슨 의미인지 조차 몰랐으나 지금은 적어도 내가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 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실제로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극권은 혼자서 수련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선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제대로 잘 가르침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으로 함께 수련하시는 분들이 자기가 모르고 있는 부분을 옆에서 깨우쳐주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태극권 수련에서 권가나 병장기 수련과 함께 반드시 추수수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수는 권가의 응용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추수를 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한 점이 보이며, 이는 막연히 습관적으로 권가를 할 때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다. 항상 상대와 함께 하므로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한마디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도의 정신수련이 추수 속에 들어 있는 것 같다. 이미 말했듯이 나처럼 성질이 급하고 겁이 많으면서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추수를 해보면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추수의 어려운 점 중에 하나는 상대를 이기려고 하지 말고 져주려고 해야 이긴다는 것이다.

또 이찬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시듯 ‘고요하게’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마음의 여유가 있고 편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공격을 끝까지 받아들이면서도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촉각을 예민하게 세우고 상대의 의중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추수는 상대와 함께 수련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가 수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요즘은 태극권을 어떤 의미를 찾을 것인가 고민한다. 나는 태극권을 단순한 건강체조가 아니라 무술(武術)이라고 본다. 어쩌면 무도(武道)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무술은 기본적으로 공격하는 상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역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다. 그 기술이 다른 무술에 비해 우월하지 않다면 수 백년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태극권이 단지 기술에만 그친다면 미래에는 살아 남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태극권의 현대적인 의미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무술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이라는 외관 속에 숨겨져 있는 무엇인가 정신적인 요소를 발견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찬 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시듯이 “고요하게 하라”는 것이 결국 마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등록일 2007-09-24 15:04
등록자 태극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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